-‘타제석기(뗀 석기)는 구석기시대, 마제석기(간 석기)는 신석기시대 유물이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이같은 역사 상식이 머지않아 수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남 장흥군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마제석기가 대량 출토돼 ‘마제석기=신석기 유물’이라는 등식을 여지없이 깨뜨렸기 때문이다. 관련 학계는 이를 세계고고학사의 기념비적 유적으로 보고 국제심포지엄을 준비하는 등 흥분하고 있다.-
이상은 중앙일간지(문화일보 2004.05.31)가 소개한 '장흥군 장동면 신북리에서 출토된 구석기 유물'에 대한 기사의 첫 대목이다. 바로 이 신북리 후기 구석기 유적 발굴을 기념하는 국제 학술대회가 지난 6월 22∼24일 장흥에서 열렸다.
이 유적은 조선대학교 박물관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발굴했으며, 유적 면적 4만평으로 국내 후기구석기 유적 중 최대 규모였다. 또 발굴지 6000평에서 2만2천년 전 유물 3만점이 한꺼번에 출토돼 유물 밀도 역시 매우 높은 곳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출토 유물 3만여점 가운데 간돌자귀(돌을 깨뜨린 뒤 갈아서 날을 세운 도구)와 숫돌 등 다양한 형태의 후기구석기 유물 20여점이 후기 구석기의 마제석기로 확인, 그 동안 마제석기는 청동기시대 유물로 생각돼 왔던 기존 통설을 바뀌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학술세미나는 새로운 기록을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유적 발굴 1년만에 그 성과를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이같은 단기간의 학술대회는 세계에서 처음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국내외 학자 30여명이 참석한 이번 학술대회는 우리나라에도 마제석기를 사용한 후기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다는 사실, 마제석기가 제작도구까지 함께 출토된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일본의 간노키(貫の木)일대 유적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하는 사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석기의 형태와 제조방법을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드믄 유적이라는 사실 등이 규명됐다.
이제 이러한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인 신북 유적을 어떻게 보존, 관리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았다.
신북 유적을 발굴한 이기길 관장은 “신북마을에서만 아직 발굴되지 않은 면적이 3만 4000평에 달하고, 신북마을과 별도로 지표조사 결과 구석기유물 이 출토된 인근 마을이 22곳에 달한다”며 “장흥·보성군 일대 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발굴이 필요하며 앞으로 전시관을 건립하여 역사체험 및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구석기 유적의 보존에 대한 일본인들의 정신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1949년, 일본에서 구석기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발굴되었던 이와주쿠의 구석기 유적은 일본의 역사를 단숨에 3만여년 전으로 끌어올렸던 것으로 유명한 구석기유적이다. 그런데 이것 이와주쿠 구석기 유적이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구석기 유적, 유물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이다. 이와주쿠 유적 발굴 이후, 지방자치단체인 군마현은 1960년 이와주쿠 유적을 지방사적으로 지정하고 유적지를 공유화한다. 또 ‘이와주쿠유적정비위원회’를 발족, 유적 보존 방안 및 사적 활용방법 등을 논의하기 시작하고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 1979년 이와주쿠 유적은 국가사적으로 승격된데 이어 1992년에는 이와주쿠 유적 발물관(문화자료관)을 열게 된다.
대지 6만9천평에 건평 600평에 이르는 일본 유일의 구석기 전문 박물관으로 찍개, 찌르개, 주먹도끼 등 구석기를 비롯해 코끼리·매머드 등 고대동물의 뼈 등의 전시를 비롯 구석기시대의 생태·식생과 대형동물에 대한 영상, 복제 등 갖가지 전시기법으로 되살려 놓아 2만~3만년 전 구석기인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주말이나 방학 때면 이곳 박물관에는 일본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든다. 학생들은 박물관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을 관람할 뿐 아니라 야외체험장에서 석기 제작, 사냥, 화석 채취 등을 통해 구석기인들의 생활을 체험, 학습한다. 구석기 상설전시 이외에 박물관대학, 심포지엄, 콘서트 등 주민을 위한 문화프로그램도 연중 마련되어 이곳 이와주쿠 박물관 일대는 하나의 유명한 문화관광상품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이처럼 이와주쿠가 일본 구석기의 산교육장으로 자리잡은 것은 지자체, 학계, 지역 주민이 삼위일체가 되어 만들어낸 성과라고 한다.
올해는 구석기 발굴 4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에서 구 석기가 확인된 것은 64년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굴되면서부터다. 이후 70~80년대 연천 전곡리, 단양 수양개 등에서 구석기 유물이 쏟아지면서 이제 우리 역사에서 구석기시대는 통설로 되었다. 또 최근에는 장흥 신북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유적지와 대량의 후기 마제걱기도 출토되었다. 그동안 구석기에 대한 연구 수준도 꽤 높아져 세계 고고학계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박물관에 관한 한 우리가 일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특히 이와주쿠 구석기 박물관 건립과 운영 사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국내에는 번듯한 구석기 박물관 하나 없다. 물론 단양 수양개 유적의 경우, 구석기 발물관이 내년 10월을 목표로 현재 70%의 건축공정을 보이고 있지만, 박물관 전시 및 운영계획 등 소프트웨어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또 최근 전곡리 구석기유적지에 대한 선사유적지 종합정비계획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음에 따라 오는 2007년까지 252억여원을 들여 2000평 규모의 박물관을 건립될 게획이라고 한다.
전남도의 장흥 신북의 구석기 유적은 우리 도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국가사적지화, 박물관 계획 추진 등 일련의 신북유적의 보존 관리문제를 지금부터 지자체,학계, 지역민이 심각히 고민해 봐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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