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안팎의 풍성한 잔치판, 농악놀이, 씨름판, 서당의 글공부, 장거리 나들이길, 서리꾼 놀음 같은 것들. TV와 인터넷이 없어도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엔 늘 비슷한 이치와 지혜가 움직여, 그때는 그 시절대로 즐겁고 신명나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었다는 게 지금껏 내 믿음이요 기억이다.”소설가 이청준씨의 말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이청준씨는“컴퓨터나 텔레비전 같은 기기는 물론 라디오나 축음기, 신문 따위도 구경하기가 힘들었”(작가의 말)던 시절의 고향을 배경으로 동화집을 펴냈다. '흙으로 빚은 동화'라는 부제는 숨가쁜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여유와 정을 글로 되새기고자 하는 작품의도를 엿보게 한다.
한 마디로 작가는 '그 시절'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 시절 옛날 이야기를 동화로 엮은 것. 어렸을 적 작가를 키운 그 고향 마을의 일들이 지금 아이들에게는 낯설고 새롭다. 정월 초하루부터 다달이 시작되는 명절 행사들과 혼인식, 마을굿 등 마을의 크고 작은 잔치들, 서당의 글 공부에서 농사철의 분주한 논밭일들, 자기 신랑의 부채를 빼앗는 민속놀이, 풀품앗이 두레패의 장난스런 촌극놀이 등 기억 창고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던 것들이 이야기가 되었다.
이 작품집에는 표제작 '숭어 도둑'을 비롯 '이야기 서리꾼', '봄꽃 마중', '일기장 속의 그날' 등 네 작품이 수록됐는데, 모두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새겨진 추억들이 주제가 되었다. '숭어도둑'에서 윤배가 고기잡이배 사람들의 싸움박질에서 소중한 형제애를 깨닫는 것처럼, ‘봄꽃 마중’에서 준영이 시집간 누나의 등짝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때 살았던 사람들은 비록 가난했어도 훈훈한 사랑을 나눴다. 그 사랑들이 동화로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디새집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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