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년대 독재정권과 싸워 온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유명
▶'자랏골 비가'서 제시된 민중理想,
'녹두장군'에서 완성
▶광주이야기'오월의 미소'로
광주항쟁 20여년 족쇄 풀어
▶퇴임 후 ‘고향’주제 소설 집필,
설화 정리 추진해 와
■화순 운주사에 담긴 민중의 理想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 계곡에는 '천불천탑'과 미완의 미륵의 꿈을 담고 있는 ‘와불’로 유명한 운주사지(雲住寺址)가 있다. 1481년에 첫 편찬되고 1530년에 증보된〈동국여지승람〉의 '능주현'편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과 각각 천 개 있다(雲住寺在千佛山寺之左右山背石佛塔各一千)"라고 쓰여 있다.
운주사는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사찰이었고, 예전의 대규모 사찰도 없어진 이름 없는 절터였지만, 1984년 전남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유적발굴 조사가 실시되고, 황석영의 <장길산>, 송기숙의<녹두장군>에서 '운주사 전설'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고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송광사의 말사이기도 한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대략 석탑 19기와 석불 90여기 정도만 남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말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1천개의 석탑과 1천개의 석불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도선국사는 국운이 일본으로 새나가는 걸 막기 위해 풍수 지리설에 따라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천불천탑을 천상에서 석공들을 불러 쌓기로 했고, 마지막 석불이 완성되던 찰나, 일을 하기 싫은 한 동자승이 새벽닭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석공들은 아침이 온 줄 알 고 마지막 석불을 일으키지도 않은 채 하늘로 올라가 버려 미륵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 도선국사가 도력으로 세운 많은 불탑, 불상 중 압권은 단연 그 마지막 석불이었다는 와불이다. 절 오른편 산 주턱에 누워있는 이 와불은 천불천탑의 마지막 천불이다.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지배하는 참민중의 세상으로 바뀌고 운주사가 있는 천불산은 새 나라의 수도가 되면서 천년동안 태평성대가 계속된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와불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 것이다.
작가 황석영은 <장길산>에서 운주사는 민중들, 곧 미래불인 미륵의 계시를 받은 반노들이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千佛千塔)을 세우려고 했던 '혁명의 땅'으로 나온다. 혹은 고려 때 일본을 치려던 여몽 연합군이 화순에 머물며 운주사를 지었다는 설도 있다. 석탑의 모양과 문양을 볼 때 몽고침략을 받은 고려 말기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만 정확한 사료는 없다. 와불 아래쪽에는 북두칠성 모습을 옮겨놓은 듯한 칠성바위가 있는데 맷돌 모양돌의 배열 상태와 크기가 북두칠성의 방위각과 밝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칠성바위를 연관시켜 칠성바위·와불·석탑의 배치 등이 북두칠성과 북극성 그리고 밤하늘의 별자리와 일치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만일 이것이 확실하다면, 운주사 석탑들은 바로 밤하늘의 별자리를 그대로 땅 위에 구현해 놓은 하나의 천문도(天文圖)인 셈이고,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민중이 꿈꾸는 '하늘의 이상(理想)'을 땅 위에 구현해 놓은, 곧 하늘의 천불을 지상에다 재연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운주사를 창건한 주인공에 대한 여러 설이 전해지고 있지만, 가장 설득적인 것은 이곳 탑의 독특한 양식이 중국남방 양식으로부터 영향받은 것과 관련된 설화이다, 즉 12세기 초 중국남방에서 해상활동에 종사했던 백제의 유민들이 고향으로 건너와 이 지역의 토호, 민중들과 어울어져 운주사를 창건하고 고토(古土)회복에 대한 비원으로 천불천탑을 조성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미륵불의 재림(再臨)을 통해 지상낙토를 꿈꾸었던 소외받고 천대받던 민중들의 비원과 이상이 바로 운주사 창건의 주역들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곳 운주사 경내 안밖 곳곳에 즐비하게 세워져 있는 석불들 거의 대부분이 부처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는 못생기고 질박한 데다 무표정들이어서 무언의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민화의 주인공들을 조각했다고 보면 딱 맞을 불상들이다. 비바람에 얼굴 형상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옛날에는 천불이었을, 그러나 지금은 고작 90여기에 불과한 이 집단적인 ‘못생긴 노지의 석불’들은 무언가에 대한 강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낮고 음습한 땅에 엎드려 구원을 바라는 중생의 모습, ‘쨍하고 해뜰 날, 한껏 펼 날’을 고대하는 민중의 아픔으로 느껴지게 한다.그들은 한결같이 그 열망, 그 소망을 안고 암석 밑에서 산기슭 여기저기서 비바람 맞으며 1천년을 기다리며 숱한 ‘민중의 신화’를 만들어 왔을 것이다.
■송기숙의 이상과 운주사
장흥출신의 작가 송기숙 선생(65)은 저항문학의 기수, 민중소설가라는 별명 못지않게 그의 2차례의 투옥과 민주화운동이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우리 나라 작가 가운데 70,80년대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 온 ‘행동하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선생의 소설은 읽지 않았어도 민주화운동가로서 선생을 아는 국민이 적잖을 정도다.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그러한 선생이 국내의 민중소설 제1인자로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송기숙 선생을 이곳 운주사에서 만났다. 선생은 예전에는 없었던 운주사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운주사와 민중불교의 상관관계부터 이야기 매듭을 풀어갔다. 운주사지를 2시간 가까이 답사하며 들려준 얘기는 천불천탑이나 와불, 칠성바위 등의 내력과 이에 얽힌 설화를 비롯 자신과 운주사와의 인연, 운주사지의 연원과 민중불교, 황석영 작가와 운주사지의 관계((송기숙 선생은 '운주사 전설'을 황석영한테 이야기했더니, 황석영이가 '장길산'에서 먼저 활용해버렸다고 말했다) 등 거의 운주사지 얘기로 일관했다. (실제로 선생은 전남대학교 박물관조사팀이 운주사를 발굴할 때 함께 참여하면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학술지에 '운주사 전설'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 했다).
선생의 얘기를 들으며, 선생이 굳이 운주사에서 만나기를 희망했던 까닭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운주사지, 천불천탑이나 와불에 담겨있는 메세지는 다름아닌 선생이 지난 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천착하며 그의 문학적인 역량과 정열을 쏟아온 바로 그 자신의 작품세계가 추구하는 민중의 수난과 저항, 민중의 힘과 비원, 이상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생은 이러한 운주사에서 자신의 작가적인 삶과 작품세계를 기자에게 투영해 보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문학의 존재이유, 작품으로 答
선생의 첫 장편으로, 3대에 걸친 한 촌락의 비극적 운명을 집약한 〈자랏골의 비가〉에 이어 1920년대 암태도의 소작쟁의를 소설화한 〈암태도〉, 동학농민전쟁을 통한 민중의 주체사상을 강조한 대하소설 〈녹두장군〉등은 모두 우리 근현대사에 나타난 민중들의 수난과 항거의 기록들이다. 선생은 이 민중소설들을 통해 민중의 수모와 핍박, 궁기과 곤비를 적나라하게 조명하고 민중적(농민적) 이상세계의 가능성을 열어보임으로써 무엇을 위해 문학이 존재하는가라는 큰 물음에 그 나름대로 답을 내려주고 있다. 즉 선생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심성에 대해 근본적인 낙관과 신뢰를 갖고, 그것이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역사적인 질곡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며 어떻게 맞서왔는가 하는 민중의 싸움을 형상화해 온 것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백의민족>, <도깨비잔치>를 비롯한 중단편집, 그리고 <자랏골의 비가>, <녹두장군> 등이었다.
특히 <자랏골의 비가>에서 시작된 그의 민중적 시각의 민중세계의 구체화는 〈녹두장군〉에서 완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녹두장군〉그의 작품 중에서도 큰 비중으로 평가받는다. 즉 그는 이 작품에서 최초로 갑오농민전쟁을 농민들의 주체적인 농민전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조선말기부터 농민내부에서 일기 시작한 반봉건의식은 결국 근대사회를 향한 민중으로부터의 주체적인 운동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보통 역사소설이 역사학을 추월하거나 견인한 사례가 드문 국내 소설들에서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과 함께 역사학의 토대 위에서 이뤄진 작품이지만 오히려 역사학을 초월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받았던 <녹두장군>에 대해 평론가 서경석교수(대구대)는 "1966년 문단에 데뷔한 이래 그가 끊임없이 추구해 온 농민적 세계의 가능성과 그들의 민중적인 기획의 세계에 대한 형상화는 초기적인 ‘강기’의 문학에서 출발하여 〈녹두장군〉의 방대한 민중운동의 세계에 이르는 긴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고 평가한다. 또 신경림 이문구 최원식씨는 <녹두장군>을 제9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그 이유로 "농민전쟁을 다룬 다른 역사소설과는 달리 동학과 농민의 관계에 대한 균형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고 농민전쟁을 농민생활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 차례의 수형생활과 해직
용산면 포곡리 출신인 송기숙 선생은 장흥고등학교 때(53∼56년) 장흥고 교지 창간작업을 주도하면서부터 문학적인 소양을 쌓기 시작한다. 전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61년), 대학원(문학과)을 다니며(61∼65년) 대학신문사 전임기자로 대학신문편집을 맡기도 하는데, 64년에 평론 〈창작과정을 통해 본 손창섭〉이 현대문학 9월호에서 조연현선생에 의해 추천되고, 이듬해 〈이상서설〉이 추천 완료되어 평론가로 문단에 정식 데뷔한다. 대학원을 마치고 65년부터 목포교육대학 교수로 7년을 재임했으며, 73년부터는 모교인 전대 문리대학 교수로 재임하다 78년 6월 27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징역4년, 자격정지 4년형을 언도받아 광주·청주교도소에서 첫 수형생활을 하게 된다. 유신정권이 교수들에게 학생 감시를 강요하며 소위 '학생지도 보고서'를 제출케 하는 등 무단 횡포를 부리자 전대교수 10명과 함께 '우리의 교육지표'라는 제하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구속과 복역의 빌미가 된 것이다.
1년간의 복역 중 이듬해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고, '80년의 봄'을 맞아 다른 교수들은 복직되었으나 선생만은 복권이 되지 않아 복권을 기다리는 중에 '5·18 광주민중항쟁'을 맞는다. 선생은 시민군 협상대표인 수습위원으로 나섰고, 요시찰인물이었던 선생을 계엄당국은 '수습을 빙자한 폭동지휘자' 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어 징역5년을 선고한다. 죄명은 '내란죄 중요 종사사'였다. 이로써 선생은 2차 수형 생활을 하게 되고 1년을 복역하게 된다.
84년 8월 17일 전대교수로 복직되는데 해직 7년만의 일이었다. 해직기간 중 선생은 지리산 피아골에 칩거하며 소설을 쓰는 한편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참여, 이 기간부터 선생의 이름 석자 앞에는 '행동하는 지식인' '저항문학의 기수'라는 수사가 붙게 된다. 또 이때부터 선생의 민주화운동의 참여는 더욱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7년 만에 전남대 복직
86년 6월 당시 호헌 반대 서명교수가 8백명에 이른다는 사실에 착안한 선생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조직하교 초대의장에 취임하며, 88년 5월에는 '한국현대사 사료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소장을 맡는다. 당초 5·18과 관련된 모든 사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하기 위해 만들었으므로 명칭도 '5·18연구소'였으나 당국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위장으로 만든 이름이 '한국현대사 사료연구소'였던 것이다. 同연구소에는 리영희·백낙청·강만길씨 등이 이사로 참여, 자료수집과 연구발표 등 광주항쟁에 대한 본격적인 자료조사를 착수했는데, 참여자 7백여 명의 구술증언과 기타 자료를 집대성, 2백자원고지로 2만5천매 분량의 〈5·18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을 발간한다. 同사료집 발간 작업 과정에서 선생은 〈녹두장군〉을 집필하는 사이, 농민전쟁에 대한 사료가 관변 자료뿐이고 농민군이 남긴 자료는 거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연구소 활동은 주로 항쟁자료 수집에 역점을 두었으며, 90년과 92년 2회에 걸쳐 광주항쟁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선생이 87년부터 승주군 선암사에 집필실을 마련하여 매주 4일씩 다니며 집필했던 〈녹두장군〉 12권은 94년 3월 완간을 보았다. 이와 함께 96년 8월부터 화순군 화순읍 무등산 자락으로 이사를 한 선생은 오랜 꿈이고 무거운 짐이었던 광주항쟁을 주제로 한 장편 소설 집필에도 전념, 지난 2월에 〈5월의 미소〉를 출간하기도 했다.
선생은 이밖에도 '균형사회를 여는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으며(93∼95년), '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으로 추대되어(94∼96년) 이 단체를 법인으로 등록하고 통일운동 이외에는 민주화운동을 지양하고 문학단체 본연의 모습으로 재정비하기도 했다. 또 96년 12월에는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전남대학교 5·18연구소'를 설립하고 초대소장직을 맡았으며 설립자료와 재산을 대학 측에 이양하기도 했다.
■<오월의 미소>는 20년 세월에
묻은 광주의 분노 형상화한 소설
"광주항쟁을 직접 경험했기에 광주이야기를 여태 쓸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현장에 가까이 있었고, 너무나 강렬한 분노를 품었기에 '문학' 이란 이름으로 글을 써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일단 그 분노를 삭히는 데만 20여년이 걸린 것이지요. 그 분노를 삭히려 시작한 일이 바로 '한국현대사 사료연구소' 를 만들어 역사적 현장과 사실을 정확히 발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 자신의 분노와 광주민중의 함성을 1백년 전 동학농민운동의 현장으로 옮겨 〈녹두장군〉을 완결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광주얘기를 소설로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97년 대통령선거 당시 대선 후보들이 한결같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사면하겠다' 고 공약하는 것을 보며 다시 치솟은 울분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지난 20년 동안 늘 광주항쟁이라는 족쇄에 묶여있는 듯한 심정이어서 소설을 한번 써야지만 풀려날 것 같았기에 광주쟁을 주제로 소설을 쓰기로 작정한 것이지요."
광주민주화운동을 한 가운데서 경험했던 선생이 20년만에 광주이야기를 주제로 쓴 〈오월의 미소〉에 대한 설명이었다.
"연구소 일에 전념하면서 7백여 명의 희생자들에 관한 자료를 정리했는데, 가장 큰 피해자는 어머니들이었고, 해서 광주의 어머니들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헌데 어머니는 모두를 품고 용서하는 분입니다. 또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수부대원 중에 당시의 가책으로 알콜 중독자가 된 사람입니다. 결국 이들도 정신적 희생자가 아니겠어요. 발포를 명령한 최고지휘자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희생자인 셈이죠. "
선생은 이런 생각에 따라 광주의 최대희생자인 한 여자와 가해자인 공수부대 장교출신 남자를 중심으로 소설을 풀어갔으며, 서로 다른 인생을 살다간 가해자와 피해자 두 사람이 죽은 후 저승혼사굿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고 화해하는 것으로 소설의 대미를 맺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찮아 개작하게 되면 다른 방법으로 끝을 맺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대·역사적 긴장에서 해방되는
작품 집필하고 싶어
"격동기를 살아 온 교수로 작가로 투철한 역사의식, 시대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고, 민중문학론에 입각한 작품을 쓰면서 행동을 주저하지 않은 데에 보람을 느낍니다. 이제 교직 생활도 마감했으므로 아쉬움은 있지만,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홀가분한 심정입니다. 앞으로는 시대와 역사적 긴장에서 벗어난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다. 따뜻한 고향 이야기같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녹두장군〉은 광주항쟁으로 징역을 살고 나와 이 작품 집필에 들어갔었고 민중사관에 입각해서 민중항쟁의 위대한 첫 출발로 동학농민전쟁을 그리다보니 역사적 무게에 실릴 수밖에 없었고 소설적 재미도 어느 정도 죽일 수밖에 없었는데, 황석영씨가 늘 농조로 하는 말이 고개에 힘을 빼고 쓰라는 말이었지요. 이제부터는 진짜 고개에 힘을 빼고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고향이야기 같은 소설을 써 보려고 합니다. 주제로는 도시화와 경제발전의 화려한 스포라이트를 받는 도시를 갈수록 황폐화되어가는 음지인 농촌에서 바라보면서, 그렇게 都·農을 대비함으로써 오늘의 농촌현실을 부각시키고 사회 전반의 균형을 찾고 싶은 작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또 분단문제를 주제로 다룬〈은내골의 기행〉에서 한 걸음 진전된 통일문제를 주제로 다룬 소설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작품의 방향과 구상에 대한 선생의 답변이었다.
■대학 정년 퇴임, 작품활동 계속
지난 2000년 8월 31일, 선생은 지난 14년 동안 단 한 시간도 휴강하지 않았던 전남대학교를 정년퇴임했다. 2000년 6월 마지막 강의를 마친 뒤 '퇴임식을 열어주겠다'는 지인들에게 "서로 편하게 떠나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며 완곡하게 거절, 심신을 쉴겸해서 캐나다로 잠시 외유를 떠나기도 했던 선생이었다.
대학을 떠난 후 96년에 광주부근 화순에 마련했던 집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필에 전념하거나 그동안 모아두었던 모든 작품·활동 자료들을 전산화 작업으로 재정리해 오고 있다.
그후 2001년 4월에는 전남대 국문과 임환모 교수가 엮은<송기숙의 소설 세계>(태학사)가 나온다. 이책은 정년을 맞은 선생의 문학적 성과와 의미를 탐색하고 그의 삶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기획, 출간된 책이었다. 그리고 지난 해(2003) 6월에는 소설집 〈들국화 송이송이〉(문학과경계)를 묶어 펴내며, 끊이지 않는 문학적 열정을 과시해 오고 있다.
그러나 대학강단에 서면서 작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1인3역의 치열한 삶을 살아온 선생의 삶답게 선생은 작품활동을 하는 한편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놓치지 못한다.
지난해 7월에는 김지하(시인), 박형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송월주(전 조계종 총무원장)등 각계 원로 100인과 함께 정치권에 촉구하는 '개혁세력 대통합 신당 건설' 추진 운동에 참여를 비롯 지난 9월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자격으로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등 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기도 한다.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해온 선생은 지난해 1월 노무현 정부에 의해 교육부 장관에 추천되는 등 '사회적 명망가'로서 자리매김돼 오다 이번에 기어코 광주문화중심도시 위원장을 맡게 됐다.
다음은 송기숙 선생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전남대학교 김용대 교수의 '내가 본 송기숙 선생'이란 글이다.
■내가 본 송기숙교수
-세속에 굴복 않는 올곧은 '참스승'
요즘 우리사회에선 '참 스승'을 찾기 힘들다. 한때 지성인의 표상처럼 여겨지던 대학교수도 물신화가 팽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 박사'처럼 술판의 취객으로 전락하거나, 어제의 경건한 예언자가 오늘은 '타락천사'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초라한 형색을 드러내고 있다. 시대에 영합하거나 세속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참 스승'의 길을 보여주는 몇몇 스승의 발자취는 그래서 더욱 뜻깊고 소중하다.
시인 고은은 '천연 기념물 송기숙/ 광주는 그가 있어 광주였다/ 아무리 바람찬 세월이 지나/ 그가 있어 광주의 밤이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선생은 1970년대 혹독한 유신시대, 80년대 군사적 폭압통치를 의연하고 꿋꿋하게 통과하시고 운동가, 교육자, 소설가의 삼위일체 상(像)이 변증법적으로 내적 혼연일체가 이루어진 아름다운 존재로 마지막까지 열정적인 삶을 살고 계신다.
선생에게는 무엇보다도 세 가지 미덕이 있다.
첫째, 실천적 지성인으로서 자신의 시대를 온몸으로 사셨다. 그 어느 사가도 70∼80년대 송기숙의 이름을 빼고 한국 지성사를 쓸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5.18 광주의 시원지가 전남대학교라면 그 학생들에게 의식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가꾸신 분이 바로 선생이다.
둘째, 현실에 깊이 관여하면서도 소설가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자기 일에 충실하셔서 '손으로 쓰다가 발로' 쓰고 '몸으로' 쓴 수많은 노작들, '암태도'에서 '녹두장군'을 거쳐 최근 '오월의 미소'에 이르기까지 숱한 문학사의 걸작을 남기셨다.
셋째, 결코 자신의 명성을 팔지 않는다. 어줍잖게 얻은 과거경력을 마치 낡은 훈장처럼 목에 걸고 돈과 권력에 자신을 팔아먹는 숱한 '배반의 역사'를 체험한 우리 현실에서, 설 곳과 물러날 때를 철저히 구분하시는 선생의 지조 정신은 더욱 빛난다.
오직 참 스승의 길을 보여주신 인간 송기숙! 한 올의 말총으로 매단 '나모클레스의 칼' 밑에 앉아 있는 경계심으로 치열한 지성인의 삶을 실천한 이 시대의 진정한 '큰 스승'이다.
김용대 전남대 독문과교수
■송기숙 프로필
64. 평론「창작과정을 통해 본 손창섭」,〈현대문학〉1회추천
65. 평론「이상서설」〈현대문학〉 추천완료
68. 단편「어떤 완충지대」〈현대문학〉
69. 단편「백의민족 1968년」〈현대문학〉
71. 단편「영감은 불속으로」〈월간문학〉, 단편「사모곡 A단조」〈현대문학〉,
단편「휴전 선」
72. 단편「어느 해 봄」「전우」「테러리스트」, 제1작품집 〈백의민족〉형설출판사 출간
73. 단편「지리산의 총각샘」「갈머리의 방울샘」「전설의 시대」「흰구름 저멀리」
74. 단편「재수없는 금의환향」「어느 여름날」「추적」,
장편 「자랏골의 비가」〈현대문학〉 1년간 연재
76. 단편「귀향하는 여인들」
77. 단편「불패자」「칠일야화」, 중편「가남약전」,
장편집〈자랏골의 비가〉창작과비평사 출간
78. 단편「만복이」「도깨비 잔치」「뚱바우 영감」「땅꾼의 꼭지」(꽁트) 기타 꽁트,
중편「몽기미 풍경」, 작품집(단편집)〈도깨비 잔치〉백제출판사 출간
79. 장편「암태도」〈창작과비평〉에 3회 분재, 작품집(단편집)
〈재수없는 귀향〉시인사 출간
80. 단편「사형장 부근」「살구꽃이 필 때까지」
81. 장편〈암태도〉창작과 비평사 출간, 장평「녹두장군」〈현대문학〉에 1권 분량 연재
83. 중편「개는 왜 짖는가」「당제」, 전집〈자랏골의 비가〉등
〈제3세대문학전집〉(삼성출판사) 제8권에 수록
84. 작품집〈개는 왜 짖는가〉한진출판사 출간, 단편「백포동자」,
「녹두장군」〈정경문화〉에 처음부터 다시 연재 시작,
전집〈암태도〉등〈현대의 한국문학〉(범한출판사) 19권에 수록
85. 소설집〈그리고 기타 여러분(최일남·이문구·송기숙)〉사회발전연구소 출간,
산문집 「녹두꽃이 떨어지면」한길사 출간
86. 작품집〈테러리스트〉한겨례출판사 출간, 〈우리시대 민중운동의 과제〉(한길신서 102권) 한길사 출간
87. 단편「파랑새」연작1
88. 작품집〈어머니의 깃발〉심지출판사 출간, 산문집〈교수와 죄수 사이〉심지출판사,
단편「은내골」파랑새 연작 2
89. 설화집〈보쌈(새로쓰는 설화)〉실천문학사출간, 작품집〈파랑새〉
(분단주제) 전예원출간
94. 장편소설 〈녹두장군〉(전 12권) 창작과 비평사 출간
96. 단편「고향 사람들(작품집 〈작은 이야기 큰 세상〉) 창작과 비평사,
장편소설〈은내골기행〉창작과비평사, 단편 「산새들의 합창」, 중편「가라앉은 땅」
2000.3 〈오월의 미소〉출간
2000.8. 전남대학교 정냠퇴임
2001.4 <송기숙의 소설 세계>(태학사. 전대 임환모교수 엮음)
2003.6 단편집 <들국화 송이송이>(문학과경계사) 출간
2004.2 광주 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장 위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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