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명의 화두는 '변혁'이다. 그냥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가히 혁명적이라할 만큼 정치, 문화, 경제, 사회 등 전반에 걸쳐 요소요소에서 변화와 개혁의 바람인 '변혁'이 소용돌이치듯 거세다. 그 변혁은 이제 '시대의 본류'로서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다.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우리 정치권도 변화의 흐름에 빨려들자마자 '시대의 본류'에 돌입돼 있는 상태이며 올 들어서 17대총선을 맞으면서는 '개혁의 물결'이라는 이름의 거센 파고를 만들어내고 있을 정도이다. 여야건, 어느 정당이건 이 파고를 헤쳐야만 그 정당의 생명력은 갖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또한 여전히 불감증에 그대로 안주한다면, 높은 파고 속에서 포말처럼 분해되고 말 것임도 자명하다.
이 도도히 흐르는 변화와 개혁의 시대, '변혁'의 시대에서 수구와 침체는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뇌관이며 안주는 곧 뇌관을 안고 자폭하는 선택이 될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곧 자폭을 예감하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다. 높은 파고에 몸을 맡기듯, 시대의 흐름에 따르듯 변혁을 지향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길이 되며 이것만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선택과 그것의 추구는 진보와 급진의 컬러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른바 '수구'가 우리사회를 너무 오랫동안 고수해왔으므로 약간은 진보적, 급진적인 것도 어느 정도 허용할 필요는 있다. 더구나 그 진보는 대안과 비전을 간직하고 있거니와 국민적인 요구와 국민적인 정서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사실 그러한 정치개혁의 주문은 바로 국민들의 요구가 아닌가.
최근 어느 정당이건 가릴 것 없이 구호만큼은 정치적인 개혁을 부르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깊숙이 들여다보면, 불안과 혼돈이 근간을 이루며 여전히 반개혁적 현상이 농후하다.
17대 총선을 맞으면서 각 당이 정치개혁을 구호로 내걸면서 선택한 방안의 하나가 '물갈이'와 '국민참여 경선'이었다. 그러나 이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은 형편이다. 현역의원 교체율은 역대 총선 공천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참여 경선도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신진인사 대신 토착세력이나 구시대인물이 득세하거나 여전히 구태적인 금품수수가 벌어지는 등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29일 현재까지 모두 194명의 단수 우세후보를 확정, 개정 선거법에 따른 지역구 242개 가운데 80%를 공천한 셈이지만, 당초 내세웠던 '혁명적인 개혁공천'이나 '대대적인 물갈이'와는 거리가 멀다. 또 당초 '개혁공천'이라는 공언이 무색할 정도로 공천자들의 면면도 논란이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른바 '극우적' 구시대 인물들이, 총선시민연대가 곱은 부적격자들이 적잖은 것이 바로 이를 잘 말해준다. 소장파의 모의원이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말한 "쌀밥에 '돌멩이'가 보인다"고 한 표현은 아주 적절하다.
민주당도 한나라당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29일 현재 98개 지역의 공천자를 확정하고 62개 지역의 경선 대상자를 결정했고 여러 곳에서 경선을 준비 중이지만 파열음이 만만치 않다. 전남의 경우 순천, 목포, 장흥·영암의 예가 그것으로, 경선 방법을 둘러싸고 파열음이 연이어지고 있다. 순천이나 장흥·영암에서는 상무위가 당원 경선으로 결정하면서 국민여론조사를 원하는 후보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29일 상임중앙위에서 공천 자격기준을 한층 강화하고, 후보자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곳은 중앙당이 개입, 국민 여론조사 경선 방식으로 실시토록 할 것으로 예상돼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동안 상호 견제와 갈등으로 빚은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열린우리당도 경선제도 자체를 둘러싼 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정치신인들이나 공든 영입 인사들이 예상 밖으로 지역기반을 확고히 다진 토착 인사들에게 고배를 마시며 줄줄이 탈락, '정치개혁'을 선도하겠다는 당의 정치방향에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경선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29일까지, 박범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이평수 수석부대변인, 최창환 전 '이데일리' 대표 등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신인들, 그리고 권오갑 전 과학기술부차관과 박정 시사어학원원장, 방송인 김방희씨, 김명전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 등의 참신하고 개혁적인 영입 인사들이 고배의 쓴잔을 마셨다.
이를 일러 "유권자들의 민심을 반영할 수 있는 최대의 방안으로 추진한 국민참여 경선이 오히려 참신한 정치신인의 진입을 막고, 조직·자금력을 갖춘 토착인사들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니냐"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정치권도 의지만큼은 정치개혁이 시대적인 흐름이라는 사실을 공감하고 이를 과감히 수용했지만, 정치개혁을 견인해 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지 못한 탓에서이다. 더구나 농어촌에서는 아직도 연줄이나 지역적인 연고 등 구태적인 선거풍토가 여전해 선거개혁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각 정당도 진정으로 사심을 버리고 개혁정치를 위한 실천적인 정치프로그램이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제도개선을 통한 정치변혁을 선도해가야겠지만, 유권자인 국민도 함께 이 정치변혁에 발을 맞추어 가야 한다. 아니, 국민이 보다 적극적으로 못미더운 정치개혁을 이끌어줘야 한다. 더 이상의 연고주의, 소지역주의, 금품수수가 우리 정치에서만큼은 더 이상 발을 못붙이도록 해 주어야 한다.
결국은 국민의 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선거를 통한 정치변혁은 바로 국민의 두 순에 달렸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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