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라는 단어는 언제나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들라면 누구든 주저없이 `어머니의 자장가' 라고 할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들라면 역시 `어머니'라고 하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사람은 성인이 되어 갈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마지막 고향, 또는 무덤일는지도 모른다.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감성의 요람이며 개성의 산실이 아닐 수 없다. 미혹(迷惑)과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지난지 오래인 이 나이에도 어머니는 나를 한사코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내가 유난한 것인가.
나의 어머니 김봉금(金奉琴) 여사는 1907년 남도의 끝자락 전남 보성에서 2남 1녀의 장녀로 태어나셨다가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셨다. 조실부모의 연(緣)도 부족하여 오빠와 남동생이 일가(一家)를 이루기 전에 세상을 떠버리는 아픔을 겪고 혈혈단신으로 친척의 집에서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내시고 아버지와 결혼하시었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시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서 사셨다가 8·15 해방을 맞아 그리운 고향의 품으로 드셨으나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가난을 벗어 버릴 수는 없어 인고의 세월을 보내실 수밖에 없으셨다.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자식들을 곯지 않게 하기 위해, 명분보다 실리를 좇아다녀야 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슬픈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스물 여섯 밖에 안된 둘째를 병으로 잃는 아픔까지 겪으셔야 했으니 그 시절 우리 민족 누구나 다 겪던 고통과 슬픔에다 가슴에 자식을 묻는 아픔까지 더한 마음을 어찌 감당할 수 있었으랴.
다행히 자식들이 하나같이 제 몫을 충실히 해내어 가세를 일으켰으니 아마 그것 또한 지성으로 자식을 위해 기도하신 어머니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눈에 선한 모습은 자식 생일이면 해뜨기 전에 옥천(玉泉)의 찬물로 목욕을 하신 후 기도를 드리곤 하셨는데 그 모습은 종교보다 더 거룩하고 위대한 신앙이었다.
그런 시어머니셨으니 그를 보는 며느리들이라고 어찌 배우지 않을 수 있었으랴. 매사에 곧고 적극적인 성품이시면서 유난히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집안 대소사에 늘 화목을 만드는 분이셨다.
우리 형제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모두 밝고, 바르고, 유쾌한 성격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어머니의 이러한 인품때문이었고, 나는 나의 어머니의 자식인 것을 늘 감사해 하고 있다. 맏아들이 경찰에 투신하여 나름대로의 기량을 발휘함으로써 가정에나 나라에 제 몫을 담당하였고, 막내인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임관되는 기쁨을 드렸다. 그때의 기뻐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다행스럽고 기쁘다.
맏아들이 공직에 몸담게 되면서 목포를 거쳐 서울로 오셨던 두 분은 얼마큼의 여유로움 속에서 자식들과 함께 일상의 행복한 삶을 사시다 이제는 고향마을의 양지바른 언덕에 아버님과 함께 잠들어 계신다. 우리 자식들은 몇해 전 부모님의 송덕비를 세우고 두 분의 사랑과 삶을 되새겨 보게 되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바로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가시고 아니 계신 지금에야 더욱 절절이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된다는 걸 안다. 또 `어머니'는 나를, 우리를 어머니의 자식으로 바르게, 착하게 살게 하신다는 것도.
만물이 새로움으로 돋아나는 생명의 계절, 이 봄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잎으로, 꽃으로 마음껏 피워 올려 이 가슴 가득히 어머니를 태워보고 싶다. 나이 드신 어버이를 둔 이 땅의 자식들이여！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 하소서.
광주일보/200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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